한 많은 사릉

2014.10.03 11:58

김학 조회 수:276

한 많은 사릉(思陵)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한 사람의 무덤을 보고 이처럼 안타까워하기는 처음이다. 너무도 무심한 내 탓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의 생애에 대하여 알아보려는 마음도 갖지 않은 것이 죄스러웠다.
문화유산 답사 때 들른 것이 사릉(思陵)이다. 안내 자료에서 단종비 정순왕후의 능임을 알았다. 단종릉은 영월의 장릉이니 왕비도 당연히 같이 묻혔으리라 생각하여 관심도 없었다. 너무나 억울한 생을 마감한 단종이라 그의 유명세에 묻혀 비(妃)의 삶은 마음에도 두지 않았다. 오늘 사릉을 참배하고 자세히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정순왕후는 15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왕대비가 되기도 했다. 사육신의 복위운동 실패로 상왕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될 때 군부인으로 격하되었다. 이어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자 궁에서 쫓겨났다. 천한 노비가 되어 동대문 밖 청룡사 근처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한때 신숙주가 자기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다. 이를 안 세조가 노비이지만 천한 노역은 시키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 정업원으로 보냈다 한다. 정업원은 왕의 사후에 후궁들이 출궁하여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초막에서 살 때는 시녀들이 동냥을 해다 끼니를 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낙네들이 식량과 찬거리를 싸리문 사이로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 채소시장을 열어 정순왕후를 도왔는데 남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세조가 집과 식량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을 하여 근근이 살았다.
단종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날마다 산봉우리 거북바위에 올라가 동쪽을 바라보며 슬피 울었다. ‘전하, 전하!’ 하고 애끓는 울음소리가 들리면 마을 아낙들도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같이 통곡했다. 그 뒤 사람들은, 영월 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던 봉우리를 동망봉(東望峰)이라 이름을 붙였다. 임을 향한 정성이 지극하여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지, 사릉의 소나무도 모두 동쪽으로 굽었다는 설이 전한다.
정순왕후는 우리 고장 태인 출신 여산 송 씨다. 어려서 아버지의 벼슬길을 따라 서울로 떠났다. 여자로 태어나 지존의 자리에 올랐으나 정권욕에 희생되어 한 많은 생을 살았다. 어려운 삶이었어도 그의 꼿꼿한 정신이 살아있어 후세 사람의 귀감이 된다. 차마 죽지 못한 삶이지만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여 82세에 눈을 감았다. 친정이 풍비박산 나서 묻힐 곳도 없었다. 단종의 누이가 시집의 산에다 장례를 모시니, 그게 바로 오늘의 사릉이다. 역적으로 몰리기 쉬운 시대에 묘지를 허락한 해주 정씨의 갸륵한 마음씨가 고맙다. 생을 마감한지 177년 뒤에 복위되어 능호를 받았다. 돌아간 단종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사릉이라는 능호를 내렸다. 왕릉은 민간 묘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전례에 따르면 해주 정씨 묘는 모두 이장해야 한다. 그러나 충성심이 깊은 정씨 묘는 그대로 유지하라는 숙종의 명에 따라 같은 묘역에 남아있다. 뒤늦게 받는 호사가 반가울리 있을까마는 법도에 따라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한다. 혈육 한 점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생명은 유한한 것이다. 언제 갈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한 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관건이다. 올바르게 산 사람들은 추앙을 받고, 잘 못 된 삶을 산 자들은 비난을 면치 못한다. 죽은 뒤에 평판이 어떠해도 당사자는 모른다. 후세 사람들이 칭송하고 오래도록 기리느냐는 것이다. 정순왕후는 어렵게 살았어도 그의 올바른 정신이 후세까지 전하여 받듦을 받는다. 여자로서 임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떳떳한 삶임을 전한다.
사릉은 아무리 보아도 명당이다. 하늘이 그의 곧은 마음을 알고 내린 자리가 아닌가 한다. 앞에서 참배하는데 어쩐지 자꾸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지금까지 모르고 지낸 나의 무지를 꾸짖는 것 같다. 나의 무지를 용서하라는 뜻으로 예를 올리고 돌아섰다.
                               (201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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