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하십니까

2014.02.21 11:10

김학 조회 수:439

안녕들하십니까

                                    김 학

귀에 익은 이 인사말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평범한 인사말이다. 어려서부터 날마다 듣고 자랐으며, 살면서 즐겨 사용했기에 누구에게나 귀에 익은 말이다.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넬 때는 ‘안녕하십니까?’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한 번에 인사를 건넬 때는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들’이란 복수를 나타내는 어미를 섞어 쓰기도 한다.
“안녕들하십니까?”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주현우(27) 씨가 고려대학교 교내 후문에 써 붙인 대자보(大字報)의 제목이다. 그 이야기가 인터넷과 신문방송에 잇따라 소개되자 들불처럼 번져,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대학가는 물론 중ㆍ고등학교에도 대자보가 나붙었고, 정부청사와 국회에까지도 대자보가 등장했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이 삼천리금수강산을 촘촘히 얽어매고 있는 이 대명천지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시대의 유물인 대자보가 나붙고, 또 그런 사실이 온 국민의 화제가 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극동의 반 토막 나라인 대한민국의 어느 사립대학에 나붙은 대자보 한 장이 바다 건너 미국의 명문 UC버클리 캠퍼스까지 번졌다. 그 대학에 다니는 우리나라 유학생이 그 캠퍼스에 대자보를 써 붙인 것이다. 그 대자보는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로 번졌다. 프랑스의 유력 신문인 르몽드는 우리나라의 대자보 열풍을 크게 보도하여 프랑스인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에 대자보를 써 붙인 고려대생 주현우 씨는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 중인 KTX노조 조합원 4천여 명이 집단 해고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의 관심을 끌려고 그 대자보를 써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자보 한 장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잔잔한 수면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문이 번지듯 대자보 한 장이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오랜 지인에게 안부를 묻듯 잔잔한 이 이야기가, 억지로 눈을 감고 살던 이 땅의 착한 백성들 마음에 불쏘시개가 되어 불을 지폈고, 그 불이 마침내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억지로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알고도 모른 체 살아가던 단군의 후손들로 하여금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입을 벌리라고 다그친 셈이다.
대자보에 글을 써 붙인 이들도 다양해졌다. 대학생이 처음 시작한 일이지만 중고등학생, 주부, 기자, 노동자, 국회의원 등도 대자보쓰기 대열에 합류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면 학교 관계자는 떼고, 시민이 전신주에 대자보를 붙이면 경찰은 그 대자보를 떼는 등 숨바꼭질을 벌였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이들 대자보에 써 붙이는 내용은 시국비판은 물론 자아성찰 등 소재도 다양해지고 있어 흥미롭다. 대자보는 세대와 지역, 계층을 뛰어넘는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다. 대학가는 물론 고등학생과 평범한 직장인들, 주부들까지도 나름대로 평소 겪었던 문제점들을 대자보에 써서 널리 알리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안녕 못 하십니다”라고 응답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인터넷문화에 익숙한 대학생들은 페이스북에서 ‘응답하라 1228’이라는 이름아래 ‘안녕 못하다’는 화답내용 1228개를 모으고 있다. 또 전국 각 대학에서 써 붙인 대자보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디지털왕국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아날로그 홍보매체인 대자보는 당연히 지구촌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찬 여고생도 있었다. 군산여고 채자은(16) 양은 “국가정보원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나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안녕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생이니까. 하지만 3ㆍ1운동도, 광주학생운동도 모두 학생이 주체였다. 우리도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적은 대자보를 학교 외벽에 붙였다고 한다. 이런 여고생이 있는 한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을 것이라 믿는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창시절이나 군대시절 그리고 직장생활을 할 때 대자보를 써 붙이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한 번도 대자보를 붙이지 못하고 말았다. 집안을 건사해야 할 큰아들이라 는 핑계로 침묵을 선택했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라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점이다. 이런 시대에 대자보가 이처럼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201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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